사물의 표정, 침묵의 언어

쉽다. 그리고 난해하다. 쉽고 난해할 수 있을까? 정경자의 사진 ‘Story within a story’가 가지고 있는 지점이다. 보이는 것들은 알아보기 쉽다. 일상의 단편적인 사물들. 저건 무엇이다라고 지칭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밖의 것들이 ‘Story within a story’에 있다. 대화와 대화 사이 느닷 없이 끼어드는 침묵. 의미는 짐작 가능하지만 말하기는 어렵다. 정경자의 사진에는 그런 침묵의 언어가 있다.
고독과 우울을 밴, 날 것 그대로의 사물
혼자, 시간의 두께를 입고, 버려지거나, 날카롭게, 흔적만 남기고, 떠도는, 그것들이 ‘Story within a story’에 있다. 낱장의 사진들은 각각 ‘무엇’을 지시하지만 동시에 동일한 분위기를 뿜고 있다. 감정의 밑바닥에 있는, 삶의 어긋난 틈 깊숙이 들어앉은 우울의 감정이다. 작가는 “나의 감각을 자극해 나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지속되는 삶 속에서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들, “퇴화가 진행되는 시간 속”에 자리한 “고독과 우울”이 배어 있는 것들이다.
이전 작업 ‘거울 속의 거울’(2000년)과 ‘Reverie, Somewhere’(2008년)에서 정경자가 보여준 것은 ‘죽음’의 이미지였다. 박제된 생명체,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날카로운 칼, 죽어 있는 것들이 생활 속에서 채집되고, 두세 개의 이미지로 묶여져 ‘죽음’을 보다 분명하게 말했다. 어두운 톤의 흑백 사진으로 작업된 ‘거울 속의 거울’은 거울이 무한 반복으로 서로를 비추듯, 삶과 죽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견디기 어려운, 그 무게를 드러낸다.
‘Reverie, Somewhere’ 역시 죽음 앞에 가라앉는 삶의 몽환적인 느낌을 일상의 파편을 통해 보여준다. 다만 이전 작업과 달리 컬러 사진이 다양한 형태로 무리 지어 있다. 이전 작업들은 모두 대상이 ‘죽음’을 가리키고, 표현 방법도 ‘죽음’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Story within a story’에서 작가는 한결 가벼워졌다. 죽음 그 자체보다 그 앞 삶의 감정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더 행복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죽음에 대해 덜 생각하기”때문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보다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은 삶의 종결이며, 그 종결이 너무나 분명한 미래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면한다. 죽음이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명백한 만큼, 삶은 부대끼며 함께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믿고 싶은 거짓이다. 혼자 죽음을 경험해야 하듯, 삶 또한 혼자 느끼고 경험한다.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감정과 경험의 끄트머리일 뿐이다. 그렇기에 고독과 우울은 피할 수 없다. 정경자는 포장하지 않은 날 것의 사물로써 ‘고독과 우울’을 이야기한다. 이로써 빈약한 죽음의 이야기에 의미를 더하고, 과정으로서 삶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전체가 아닌 부분, 설명이 아닌 암시
정경자는 죽음 앞 삶에서 느끼는 ‘고독과 우울’을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암시할 뿐이다. ‘Story within a story’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감정이나 생각들, 또는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는 자신과 비슷한 것들을 채집하고 수집한 결과이다. ‘무엇을 찍어야지’하고 촬영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그러다 자신과 닮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배어 있는 사물을 만났을 때 셔터를 누른다.
그 순간 작가는 “알 수 없는 짜릿함과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을 가진다고 했다. 동일한 삶을 사는 인간이 아닌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한다. 무수한 표정과 숱한 이면을 가진 인간보다 무표정한, 감정이 없는 사물들로부터 동질감을 찾는다. 그에 의해 채집된, 수집된 이러한 사물들은 작가의 표정과 감정을 입고 있다. 작가는 가위로 재단하듯 정사각 프레임에 정확하게 사물의 표정을 담는다. 그렇게 일상의 사물들은 쉽게 읽을 수 없는 감정을 품는다.
감정이 투영된 대상, 그 대상은 분명한 외연을 가지고 있지만 섬세하게 들여다보았을 때 투영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눈으로 마주하는 세계의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사각 프레임에 가둬 세계의 중심으로 만드는 찰나. 그 찰나에 조우한 대상들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것이다. 넓은 세계, 수많은 사물은 보는 방식대로 의미를 가진다. 무심히 보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유심히 보면 유의미한 것이 된다. 보고 읽는 만큼, 꼭 그 만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정경자의 ‘Story within a story’에 등장하는 사물들과 눈을 마주한다. 사건이 없는 상황 속의 한 부분, 부분 속 한 사물이 정사각 프레임에 담겨 있다. 세계의 한 장면, 그 장면의 한 부분, 그 부분의 한 대상. 대상에 파고들수록 감정은 압축되고, 마침내 침묵에 가까운 최소한의 대상만이 드러난다. 프레임 밖 공간 전체, 프레임 이전의 시간은 단지 대상, 그 ‘사물’을 통해 암시될 뿐이다. 그것은 일목요연하게 고독과 우울의 감정을 향한다.
우울의 감정이 절제되고 요약되어 있는 사물의 표정들. 감정과 기억이 생활의 한 부분에서 시작하듯, 그 표정들에서 짐작 가능한 수많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말없는 암시가 유사한 경험들을 환기시키고, 의미를 짐작하게 하는 것. 그 순간 사물의 표정들은 다양한 의미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발견한 사물의 표정들이 이야기를 갖는 순간이다. 작품의 제목 ‘Story within a story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Story within a story’에서 정경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적게 말하는 방식으로 전한다. 설정과 연출, 혹은 디지털 작업을 통한 창조로 자기 목소리를 크게, 많이 내는 최근의 사진들에 비하면 일견 순진해 보인다. 적게, 작게 말하는 이가 주의를 끄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주의를 끌기 위해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날 것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을 고집스럽게 선택했다. 이로써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를 지키고,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다. 규정하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그 폭은 더 넓고, 솔직한 목소리이기에 울림이 더 크다.
‘Story within a story’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의 섬세한 시선이 필요하다. 보이는 대상만을 보고 ‘저건 무엇이다’라고 지나가면 많은 의미도 지나치게 된다. 주목하고, 살펴보고, 집중하는 것. 사진을 보는 방법이기도 하고, 삶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봤다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알기 위해서는 보아야 하고, 보기 위해서는 시선을 멈추고 주목해야만 한다. 그 순간 침묵할수록 시선은 더 깊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혼자 의미를 찾아야 하는 침묵의 순간. 그 침묵은 소통 불가능한 삶의 어긋난 빈틈, 사이는 얇지만 깊이는 까마득한 그런 삶의 빈틈과 닮아 있다. 사진은 그 까마득한 빈틈에 ‘반짝’하고 빛을 비춘다. 그 찰나, 우리는 빈틈에서 ‘무엇’을 발견한다. 정경자의 ‘Story within a story’는 죽음을 향해 가는 삶, 그 한복판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빈틈들을 비춘다. 그 섬광 속에 비치는 사물의 표정들. 죽음을 기억하는 삶의 표정들이기 때문에 들여다볼 만하고, 피할 수 없는 고독을 받아들이기에 그 우울 또한 아름답다.
글_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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