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아니라 공간이다. 그리고 감정이 아니라 감각이다. 한 걸음 물러난 것이고, 그렇기에 조금은 덤덤하다. 정경자의 전시 <감각의 경계>(스페이스22, 3.28-4.16)가 이전 전시와 다른 점이고, 이번에 소개된 신작들이 갖는 특징들이다. 사물의 표정보다는 공간의 표정을 읽게 된다. 물론 그 표정은 여전히 낯설고, 어정쩡해 보이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요상한 표정이다.
오직 ‘현재’만 있는 공간들
정경자는 길을 가다 “나랑 비슷한 것들”을 스냅 사진으로 주워 올린다. 언어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개가 “자리를 잃어버리거나 엉뚱한 곳에 잘못 자리 잡은 것들”이다. “나랑 비슷한 것들”, 작품의 테마가 자기 자신이고 일정 시기 자신의 시선이 머무는 것들을 모아 이야기를 만든다. 전시에서 작품의 독특한 배열과 배치는 그녀만의 어법이다. 이미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두고, 매번 다른 구성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Drifting”, “So, Suite” 시리즈와 “Elegant Town”(2016) 시리즈를 묶었다.
이전에 발표했던 시리즈들이 사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이번엔 그 사물이 자리한 배경까지 무대에 세웠다. “Drifting”과 “Elegant Town” 시리즈에서는 도시의 건물을, “So, Suite” 시리즈에서는 호텔의 스위트룸을 그 배경으로 했다. 그 공간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작업의 테마인 자기 자신이 ‘기억’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현재만 있는 공간과 기억’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사진과 기억’에 대한 것이다. 여기엔 기억을 잃어갔던 사람을 잃은 경험이 주요했다. 수십 년 함께 보낸 시간, 함께했던 공간을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한 공간’에 머물렀지만 기억을 잃은 그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만 있었다. 그가 쌓아온 머릿속 과거의 기억은 그조차도 찾지 않는 기억이 되어 버린 것. 기억을 잊어가는 그는 ‘그’라고 불릴 수 있는 정체성마저 잃어가고, 매일 새로운 ‘그’가 됐다. 그로부터 그녀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고, 우연히 ‘현재’만 있는 ‘그랑 비슷한 공간’을 만났다. “나랑 비슷한 것들”에 머물던 그녀의 시선이 ‘그랑 비슷한 공간’으로 확장됐다. “So, Suite” 시리즈에 담긴 어느 호텔의 스위트룸은 만들어진 지 25년이나 됐지만, 투숙객에게 그 공간의 과거는 의미 없다. 그들에겐 그저 어떤 날의 일회적인 공간일 뿐이다. 매일 아침 새로 갈아 끼우는 표백된 하얀 시트처럼 매일의 기억을 표백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녀는 ‘그랑 비슷한 공간’인 이 스위트룸이 그처럼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스위트룸 곳곳에 쌓인,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기억들을 스냅 사진으로 기억했다. “Drifting”과 “Elegant Town” 시리즈에서는 한없이 얕고, 얇은 도시의 건물들을 담았다. 도시를 거닐며 ‘저 건물은 과연 과거가 있을까? 미래가 있을까? 역사에 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직 ‘현재’만 생각해 손재주 좋은 사람이 순식간에 만들어놓은 종이 집, 플라스틱 도시 같다. 공간감은 있는데 원근감이 사라진, 사진 속 도시 건물들이 두께도 깊이도 없이 짐짓 공간인 체하고 부유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얇디얇은 무대에도 그 쓰임을 알 수 없이, 무턱대고 자리를 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
기억과 사진, 감각의 경계들
정경자는 기억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신의 사진들을 돌아봤다. 우연히 만나는 것들과 교감하여 스냅 사진을 쌓아가고 있는 작가로서의 행위가, 삶에서 한 인간이 기억을 쌓아가는 과정과 유사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스냅 사진은 선택적이고, 편집 가능한 그리고 불연속적인 기억의 속성과 유사하다. 선연한 것 같지만 결국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사진 한 장, 한 장.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전시에서 늘 두세 장의 이미지, 혹은 그 이상의 사진들을 매번 다르게
배열, 배치한 것은 마치 기억이 머릿속에서 순서 없이, 느닷없이, 때론 엉뚱하게 튀어나와 이어지고 충돌하는 것과 같다. 이번 <감각의 경계>에서도 “Drifting” 시리즈의 경우 100×100㎝ 크기의 사진 옆에 60×60㎝ 사진 3장씩을 조합해 놓는 방식으로 액자를 설치했다. 마치 마음대로 쌓는 블록처럼 몇 차례 이어지는 3개의 액자 조합에 고정된 틀은 없다. 또 “So, Suite” 시리즈는 전시장 본래의 모서리를 이용해 60×60㎝ 또는 70×60㎝의 크기로 분산시켰다. 게다가 “Elegant Town” 시리즈는 같은 크기의 파노라마 프레임을 정한 후, 그 안에서 두 장의 사진을 내키는 대로 잘라 딥틱(diptych)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녀의 사진들은 기억의 파편들처럼 떠다니다 잡아끌어 모으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애초 조합되기 이전, 낱장의 사진에도 확신할 수 있는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이 투영돼 하나의 기억이 단일한 의미로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너무 많은 말을 해서 한 장의 사진은 단일한 의미를 얻을 수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각자의 의미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경자는 ‘감각의 경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 ‘감각의 경계’는 각자의 경계를 무너뜨려 단일한 의미를 공유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계를 인정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의미와 이야기를 갖길 바라는 소망을 비친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길 바라는 것은 욕망이고 가능한 것들을 이뤄내는 것이 열정이라면, <감각의 경계>는 그런 열정의 표현이다. 감정에 머물지 않고 감각을 열어 타인과 세계를 담담히 마주하는 것, 이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시켜 가고 있는 그녀를 <감각의 경계>에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