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연결한 ‘기억’이란 공통분모

인스타그램의 프레임에 익숙한 관객에게 한눈에 쏙 들어오는 정방형 프레임이다. 예리하게 트리밍된 사진 속 피사체가 빼곡히 들어찼는데, 신기하게도 어떤 ‘틈새’가 보이는 듯하고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스페이스22 공간에 전시된 정경자 작가의 사진 작업 얘기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어떤 순간을 길어 올려 화면에 압인해 둔 스냅 사진들이다. 찰나의 모습을 정직하게 담은 스트레이트 사진인 동시에 결과물의 프레이밍과 디스플레이로 잘 정돈된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독특하다. 정경자 작가는 자신이 전적으로 직관에 의존하여 셔터를 누른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이 감각을 가르는 경계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구성했다고 한다. 전시 제목이 <감각의 경계>인 이유다.
작가의 3년 만의 개인전인 이 전시에서는 익명의 건축 공간 내외부에서 포착한 주관적인 순간들을 선보이고 있다. 주거공간이나 성당 등 사람들이 일정 시간 동안 머무는 공간의 주변부를 고요한 시선으로 담아낸 신작 <Drifting>(2019)과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앞둔 오래된 호텔 스위트룸의 틈새를 신비로운 구도로 클로즈업한 <So, Suite>(2019), 한국 곳곳의 신도시 풍경을 한 화면 속 2장의 사진으로 재조합한 <우아한 도시>(2016) 시리즈가 그것이다.
<우아한 도시> 시리즈는 2장의 가로 포맷 사진이 한 프레임 속에 합쳐진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프레임 속 각각의 사진은 균질화된 색감과 트리밍 때문에 마치 한 장소에서 촬영한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사진은 작가가 전국의 다양한 신도시를 돌며 촬영한 각각의 사진을 이어 붙인 것이다. 신도시 내 건설된 주거시설의 엇비슷한 규격의 사이사이를 포착한 사진을 재배열했다.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우아함이라는 신도시의 미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속 장면이 한 프레임에 들어와 공간의 특수성이 삭제되는 순간에 극대화된다. 이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를 살아가며 서로를 모방하는 우리의 일상과도 연결된다. 지구 어디에 있든지 동시간대의 유행을 추구하며, 균질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우아하지만 지루한 일상 말이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가로로 이어 걸린 <우아한 도시> 연작 맞은편에는 가로로 길쭉한 창문이 나 있어, 공간이 위치한 강남역 한복판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창문 프레임 너머로 보이는 고층 건물의 단면과 그 사이를 오가는 행인의 모습이 또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어 매 순간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편, 25년여의 역사를 지닌 서울의 한 호텔 스위트룸 내부를 구석구석 촬영한 <So, Suite>는 공간에 배어 있는 ‘기억’이라는 추상적 시간관념을 작가의 감각으로 형상화한 사진들이다. 시간의 흔적이 배어 있는 낡은 의자나, 오랜 시간이 지나며 뒤편에 걸린 오래된 그림과 일체가 된 듯한 소파의 바랜 색감 등, 사진 속 사물은 뒷벽의 그림이나 다른 가구와 어우러져 절묘하게 트리밍 되어 전체가 아닌 부분만이 나타나고 있다. 자연스레 사물 자체보다도 사물이 배치된 공간의 공기에 주목하게 된다. 개인이 일시적으로 점유할 뿐인 호텔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과 기억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사람들의 주관적 기억 속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각인된다. 작가의 스위트룸 사진은 그러한 기억이 공유되는 터미널과도 같다. 플랫한 느낌으로 촬영된 공간에는 원근감이 사라졌다. 화면 속 개별 사물이 아닌 전체적인 이미지 속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의 신작 연작은 작가의 시선이 초점을 맞춘 피사체 뿐 아니라 화면 바깥을 품은 듯 좀 더 멀리 펼쳐진 것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과거 작품 속 개인적 시점이 확장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일상 사물과 그 공간의 조우에 초점을 맞춘 <Story within a Story>(2010~11),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상을 반영한 <Speaking of Now>(2012~13) 등에서는 일상의 관찰자이면서도 대상과의 거리감이 가까운, 렌즈 뒤 작가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으므로.
‘기억’이라는 테마는 개성 잃은 대단지 거주공간의 주변부를 담은 또 다른 신작 <Drifting>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표류한다’는 의미를 가진 작품 제목처럼, 공간의 역사는 간데없고 ‘화이트’ ‘콘크리트’라는 지정된 미감으로 포장된 건물의 구석구석을 담아내면서 주관적 기억의 가능성을 찾아 자유롭게 흐르는 시선이 돋보인다. 극단적으로 클로즈업되어 오히려 가짜처럼 보이는 화초나, 주거 공간 한 벽면을 차지한 낡아 바스러져 가는 포스터 사진을 규격화된 건축물의 크고 작은 사진 사이사이에 배치하여 주관적 서사의 자리를 찾아주는 듯한 디스플레이로 구성됐다. 작가는 “각각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사진들은 배치에 따라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이야기들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직관이라는 추상적 렌즈를 통해 창조한 사진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당신과 나의 ‘기억’이라는, 공통되고도 한없이 주관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전시다.
/채연
미술 저널리스트. 한글과 영어로 미술 현장에 대한 글을 쓴다. Frieze, ArtReviewAsia 등 기고. 아트인컬처 기자, 2018광주비엔날레 전시 코디네이터 및 프로듀서 역임.